DNA는 정말 '언어'였을까?... 소련 과학자가 던진 40년 전 질문, 다시 주목
"유전자의 98%는 쓰레기가 아니라 문법이었다"는 도발적 가설, 학계는 여전히 회의적
[SNS 타임즈] 미국의 의식 과학 전문지 'Stream of Consciousness'를 운영하는 에릭 톰슨(Eric Thompson)이 최근 소개한 옛 소련 과학자의 실험 하나가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1985년 모스크바, 생물물리학자 표트르 가리아예프(Peter Gariaev)가 살아있는 DNA 가닥에 레이저를 통과시킨 뒤 산란된 빛의 패턴을 기록했는데, 그 패턴이 통계적으로 우연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일정한 구조를 띠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대목은 그다음이다.
가리아예프가 챔버에서 DNA를 꺼낸 뒤에도, 빛의 패턴은 마치 DNA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최대 30일 가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이 현상에 'DNA 팬텀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실험은 1995년 미국 하트매스 연구소(HeartMath Institute)의 물리학자 블라디미르 포포닌(Vladimir Poponin)에 의해 재현이 시도됐고, 포포닌 역시 비슷한 현상을 관측했다고 보고했다.
문제는 이 결과를 기존 분자생물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이다.
가리아예프는 여기서 발상을 전환해, 아예 유전학이 아닌 언어학의 도구로 DNA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DNA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실제로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부분은 전체의 2%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 98%는 오랫동안 '정크(junk) DNA', 즉 별다른 기능이 없는 잔여 서열로 취급돼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다만 최근 학계에서는 이 표현 자체가 다소 시대에 뒤처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가 주도한 인코드(ENCODE) 프로젝트 등의 후속 연구에서 이 비암호화 영역 상당수가 유전자의 발현 시점과 방식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쓸모없는 DNA'라는 통념은 이미 상당 부분 수정되고 있는 셈이다.
가리아예프의 주장은 이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그는 이 비암호화 서열을 자연언어 분석에 쓰이는 통계 기법인 단어 빈도, 문장 구조, 문맥 의존성 등으로 분석했고, 그 결과가 마치 문법 규칙을 따르는 언어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그는 DNA를 세포가 끊임없이 말하고, 듣고, 고쳐 쓰는 일종의 '언어적 기록물'로 규정했다.
화학적 신호 체계가 DNA의 한 '방언'이라면, 그 밑에는 전자기파를 매개로 한 또 다른 방언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 가닥의 DNA가 만들어내는 파동 패턴을 레이저 광선에 실어 옮기는 장치까지 고안했다. 이런 그림이 맞다면 DNA는 부품을 쌓아둔 창고라기보다는, 신호를 내보내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수신기에 가깝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심지어 그는 사람의 말소리 역시 변조된 음파인 만큼, 특정 발화가 DNA에 직접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이런 발상을 평생에 걸쳐 '파동유전학(Wave Genetics)'이라는 이름의 이론으로 발전시켰고, 202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주류 학계로부터 폭넓은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실제로 가리아예프의 팬텀 효과는 이후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재현이 시도됐지만, 통제된 실험 조건에서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는 보고는 나오지 않고 있다.
서구 과학계 다수는 그가 관측한 패턴이 빛의 간섭 현상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거나 실험 오차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DNA 정보가 분자 서열이 아닌 전자기 신호 형태로 원격 전달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현재까지 알려진 분자유전학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가리아예프의 논문 상당수가 동료 심사를 거치는 정통 학술지가 아니라 대체의학이나 초심리학 계열의 소규모 저널에 실렸다는 점도 학계가 거리를 두는 이유로 꼽힌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되풀이해 소환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유전자가 단순한 화학적 부품이 아니라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정크 DNA의 재발견이라는 실제 과학적 흐름과 맞물리면서 묘한 설득력을 얻는다.
다만 그 설득력이 향하는 지점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이를 아직 풀리지 않은 생명의 신비를 향한 대담한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언어와 파동이라는 매력적인 비유를 덧씌운 사례로 읽는다.
가리아예프가 남긴 것은 결국 증명된 이론이라기보다 하나의 질문에 가깝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몸속에 지니고 있는 이 긴 문자열은, 과연 무엇을 향해 말을 걸고 있으며 또 무엇을 듣고 있는가.
과학적 검증은 여전히 그 답을 내놓지 못했지만, 질문 자체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계속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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