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직무 장벽 허문다… 미국 기업 '승진 사다리 대폭 축소'
빌 바튼 COO "전 직원 AI 교육, 전문가보다 '다재다능형 인재' 늘어". 일의 방식은 '직접 수행'에서 'AI 에이전트 지휘'로…"성패 가르는 건 기술 아닌 태도"
[SNS 타임즈-LA] 인공지능(AI)이 기업 안의 직무 장벽을 허물고 있다. 전문 지식과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일을 다른 직군 직원도 AI 도구의 도움으로 해낼 수 있게 되면서, 직무별 전문성을 기준으로 짜인 조직 구조와 인력 운용 방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변화는 이미 일부 기업의 인사 제도로 나타났다.
미국 이커머스 기술기업 Rokt는 직급과 직무별로 승진 단계를 나눠 둔 '직무 사다리(job ladder)'를 15단계에서 4단계로 줄였다.
이 기업의 빌 바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AI 전문 매체 '더 딥 뷰(The Deep View)'와의 인터뷰에서 "법무, 재무, 보안, 마케팅 등 회사의 모든 기능이 이제 AI 도구를 써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AI가 직무 간 경계를 흐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기업의 직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변화 속에서 뛰어난 직원을 가르는 핵심은 기술력이 아니라 태도라고 강조했다.
바튼 COO는 올해 5월 29일 Rokt의 COO로 임명됐다. 그의 제품·엔지니어링 분야 경력은 40년이 넘는다. 업계에서는 그가 아마존에서 음성비서 '알렉사'의 초기 설계에 참여한 인물로 소개된다.
바튼 COO에 따르면 AI 도구의 확산으로 엔지니어는 비기술 분야를 이해하기 쉬워졌고, 비기술 직군 직원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직접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스페셜리스트(전문가)'보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제너럴리스트(다재다능형 인재)' 중심으로 인력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변화는 조직 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Rokt는 직급과 직무별로 승진 단계를 나눠 둔 '직무 사다리(job ladder)'를 15단계에서 4단계로 줄였다. 바튼 COO는 "사람들이 낡은 경계를 넘어 역할 수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도구의 힘"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이 같은 전환을 의도적으로 뒷받침했다. 바튼 COO는 Rokt가 모든 직원에게 AI 교육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비기술 직군도 해커톤(정해진 시간 안에 팀을 꾸려 결과물을 만드는 개발 경연)과 사내 대회에 참여시켜 AI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것이다.
일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직원들은 이제 직접 손으로 작업하기보다 스스로 판단해 업무를 수행하는 AI 프로그램, 이른바 'AI 에이전트'를 이끄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에 가까운 역할을 하게 됐고, 그 결과 과거 몇 주가 걸리던 작업이 몇 시간 만에 끝나기도 한다고 더 딥 뷰는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기술 숙련도가 전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Rokt에서 4년, 기술 업계에서 40년을 일하는 동안 변하지 않은 원칙은 뛰어난 직원의 핵심 자질이 기술이 아닌 태도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바튼 COO는 "끈질기고, 회복력이 있으며, 엄밀하고, 호기심이 많고, 낙관적이며, 겸손해야 한다"며 "변화를 마주하고 극복하고 받아들이며 두려워하지 않고 성장하도록 하는, 시대를 초월한 태도"라고 말했다.
전문가와 다재다능형 인재를 둘러싼 논쟁은 AI 이전부터 있었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저서 '레인지(Range)'에서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분야일수록 한 우물만 파는 사람보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Rokt는 2024년 중반 최고AI책임자(CAIO) 직책을 신설하고 클레어 사우시를 임명했다. 사우시는 이 직책의 등장이 AI를 단순 효율화 수단이 아닌 새로운 사업 영역을 만드는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한 흐름을 반영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이번 내용은 한 기업 경영진의 설명에 근거한 것으로, 직무 사다리 축소와 업무 시간 단축의 구체적 근거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른 기업과 산업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나는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