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일과 부활 주일에 관한 단상’
추상(秋霜)논객 이상일 칼럼

▲ 자료 사진 편집. /SNS 타임즈
이번 주 고난 주일을 지나 다음 주면 부활 주일이 돌아온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신 후 승천하시기 전 내린 지상명령,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사도행전 1장 8절 관련 말씀을 살펴본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will witness in the Jerusalem and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the Acts 1:8)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는데, 승천하시기 직전 감람원 (the Mount of Olives)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지상(至上) 명령이다. 지상명령은 땅 위의 명령이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명령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에 남, 북으로 분열되며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졌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성은 남유다에 있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고, 200여 년 후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세계사에서는 앗시리아)-바벨론(지금의 이라크)-바사(세계사에서는 페르시아, 현재의 이란)-헬라(현재 그리스)-로마(현재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옛날 전쟁에서 패전하면 승전국은 패전국의 백성을 노예, 기술자로 부리기 위해 포로로 끌고 갔다. 멸망된 북이스라엘, 남유다 백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디아스포라"(헬라어 Diaspora, 흩어짐, 영어로는 Dispersion)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위의 예수님 지상 명령 내용 중, 유대를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사마리아" 지역을 구체적으로 거명하고 있는데 비해 동쪽, 서쪽, 남쪽은 "땅끝까지"로만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을 특별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그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세계관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움직인다는 천동설, 그리고 지구는 편평해서 배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가면 땅끝 낭떨러지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구약 창세기를 기록한 기자도 지구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기록한 것 같다. 지구와 우주 전체를 1:1로 바라본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Genesis 1:1)
놀랍게도 이 지구 중심의 세계관은 종교 권력이 정치 권력을 압도했던 중세까지 유지됐다. 갈릴레오가 그 당시 발명된 천체 망원경을 개량해 천체를 관측한 결과, 이전의 폴란드 출신 카톨릭 신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확인하자 (코페르니쿠스는 교황청이 두려워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1543년 지동설을 담은 책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발간했다), 1632년 신성을 침해했다는 죄목으로 종교 재판에 끌려나와서, "성경은 거짓이 없고 잘못될 수 없으며, 간혹 일부 해석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있을 뿐이다. 성경은 진리를 가르키는 것이며, 과학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동설을 부정하고 목숨을 건졌지만 집에 연금된 상태로 노후를 지내다가 1642년에 사망했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인하고, 밖으로 나와서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는 후세에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로 추측된다.
1991년 로마 교황청은 공식적으로 갈릴레오 사후 350년 만에 갈릴레오에게 과오를 사과했다.
근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조성된 코페르니쿠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 땅을 움직이게 하고 태양을 멈추게 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 중에 태양과 달을 멈추게 했는데 (여호수아 10장 12~13절),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멈추게 했다. 폴란드 인들은 코페르니쿠스를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하고 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땅끝은 북쪽으로는 로마? 동쪽으로는 인도, 남쪽으로는 애굽, 서쪽으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베리아 반도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북쪽으로는 사마리아 지역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시면서, 동쪽, 남쪽, 서쪽은 그냥 "땅끝"으로만 언급했다.
예수님은 이 정도로 사마리아인과 사마리아 지역을 귀중하게 생각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인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다.
요한복음 4장 9절에는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 평민과 북이스라엘로 이주해온 이민족 사이의 혼혈족이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 북이스라엘 귀족 27,000여 명을 850km 떨어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북쪽으로 이주시키고, 북이스라엘 지역에는 앗수르가 정복한 바벨론 등지의 귀족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혼혈 정책을 실시했다. 북이스라엘 평민과 이주해온 이민족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북이스라엘 지역을 사마리아로 불렀다. 순수 혈통을 상실한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유대인들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배척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을 복음의 동반자로 껴안으셨다.
예수님은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 피해를 본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외면하고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사마리아인 예화(누가복음 10장 25~37절)’를 들면서 설교하는 것을 봐도 사마리아인을 어여쁘게 생각하신 것 같다.
그 당시 예수님은 소외된 자, 약한 자, 가난한 자를 먼저 생각하셨다. 이처럼 현대의 사마리아인은 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이 아닐까? 그리고 현대의 사마리아 지역은 북한 등과 같이 자유를 억압받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교회, 믿음의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성도들이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교회의 공동체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문을 닫는다면, 유럽에서 보듯이 기성 세대의 성도가 지나가고 젊은 세대로의 교체가 일어날 때, 교회의 소멸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것이 교계 지도자들의 우려다.
특히, 지난 코로나 팬데믹 3년간의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가 많이 약화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향을 받은 종교 중 개신교가 가장 많은 타격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그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감염 방지를 위한 행동 지침이 밀집, 밀폐, 밀접 등 "3밀"을 피하는 것이었지만, 개신교가 불교, 천주교 등 다른 종교에 비해 "3밀"을 가장 많이 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중세의 흑사병이 세계를 변화시켰듯이,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세상을 크게 변화시켰으며, 이는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예외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믿음의 공동체가 건강해야 교회가 반석 위에 굳게 서게 된다.
예수님이 언급한 사마리아 지역과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성경적 관점에서 추적하다 보니, After Corona 시대, 교회의 믿음의 공동체 회복 운동까지 비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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