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닥터가 인간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계기로 살펴본 의료개혁, 교육 개혁(3)

[SNS 타임즈] 과거에는 의료 업계에서 원격 의료(비대면 진료)가 인간 의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AI 닥터가 더 큰 경쟁 상대로 부상하고 있다.
의사들 중에서 내과의사나 영상의학과 의사가 가장 먼저 AI 닥터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의과대학에서 전문의 과정을 선택할 때 내과와 영상의학과 지원자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이미 의사들도 AI 닥터와의 일자리 경쟁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현재 정부와 의사 단체 간의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놓고 강대강 대치의 이면에는 미래 AI 닥터를 어떻게 전망하는지에 대한 시각 차이도 그 원인이라고 추정된다.
AI 닥터는 인간 의사의 미래 경쟁자
의사들의 미래 경쟁자는 뇌파계와 초음파 기기 등 최신 의료 기기로 무장한 한의사, 6년제 교육 과정을 이수하며 실력이 높아진 약사, 간호법 개정으로 독자적인 업무 영역을 확보한 간호사, 그리고 원격의료 플랫폼 등이 아니라, AI 닥터가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할 전망이다.
AI 닥터가 초기 단계에서는 인간 의사들의 진료를 돕는 보조자 역할을 하겠지만, AI 의료 기술의 성숙과 일반 국민들의 AI 닥터에 대한 신뢰도와 친근감이 높아지면, 인간 의사를 대체하는 시기가 도래할 수 있다.
그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겠지만 AI 발전 속도를 볼 때, 아주 먼 미래는 아니다. 이번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확대 규모를 연 2000명씩 5년간에 걸쳐 1만명 증원 계획으로 국한하고 있는 이유가 미래의 AI 의료 발전에 관한 정확한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초의 AI 닥터 왓슨(Watson) 도입
2016년 11월 중순 인천 길병원은 IBM이 개발한 AI 닥터 왓슨을 도입해 2017년 1월까지 대장암 23명, 폐암 20명 등 총 85명의 암 환자 진료를 했다. 2016년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에서 왓슨으로 암 진료를 시작했다.
AI 닥터가 본격적으로 암 진료를 하면서 인간 의사와 왓슨의 처방이 엇갈리면 대부분 환자는 "왓슨(Watson)을 따르겠다"고 했다.
또 나이 지긋한 교수의 권위가 전과 같지 않은 현상도 나타나곤 했다. 병원 환자들도 오랜 경험을 가진 의사의 판단만큼이나 수많은 데이터로 무장된 AI 닥터의 판단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AI 닥터가 우리 의료 분야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암 치료에는 수술을 먼저 할지, 항암제를 먼저 써서 암 크기를 줄여 놓고 수술을 할지, 아예 수술 대신 방사선 치료를 할지 등 여러 선택이 존재한다. 이제까지는 해당 병원의 권위 있는 교수의 경험과 취향, 의견이 치료 방법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왓슨은 이런 관례를 무시하고 최적의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주임 교수의 권위가 맥없이 무너지곤 했다.
국내 병원 최초로 도입한 AI 닥터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길병원의 경우, 왓슨 도입 1년 만에 대장암, 유방암, 폐암 진료 건수가 국내 10위 안에 진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 병원에서는 1년 동안 557명의 환자가 왓슨으로 진료를 받았고, 이들의 만족도는 90%를 넘어섰다.
인천 길병원에 자극받은 지방 병원들이 앞다투어 왓슨을 도입했다.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쏠리는 환자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왓슨을 도입한 지방 병원들은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를 줄이고 의료진 간의 협진을 활발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AI 닥터가 성공적으로 의료 현장에서 자리를 잡는 듯 했지만 왓슨이 국내 상륙한지 2년 차인 2018년 접어들면서 더 이상 세력을 넓히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왓슨이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이나 의료보험 제도 등 국내 의료 환경을 반영하지 못해 활용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 많은 병원들이 도입을 꺼렸던 것이다.
당시 폐암의 경우 정확도가 18%, 위암과 유방암의 정확도도 40%대에 불과해 의료진 및 산업 관계자들의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IBM은 결국 왓슨의 암 치료 프로젝트와 신약 개발을 위한 AI 플랫폼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 2016년 11월 인천 길병원이 도입한 IBM의 AI닥터 왓슨은 초기에 의료 현장을 많이 바꾸어 놓았는데, 향후 본격적인 AI닥터 도입시 의료 현장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SNS 타임즈
AI 닥터가 인간 의사를 대체 가능할까?
우리나라 여러 병원에 도입되었던 IBM의 왓슨처럼 진단과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AI가 있고, 수술을 도와주는 로봇은 이미 진료 현장에 도입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2021년부터 국가 출연으로 AI '닥터 앤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닥터앤서2.0 사업단'은 12개 질환 AI 정밀의료 소프트웨어 24종을 개발하고 있다.
AI 닥터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진단과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의료 분야, 특히 환자를 직접 접촉할 필요가 없는 분야에서는 AI의 발전으로 인해 진료 효율성이 급격히 향상될 것으로 보이며, 궁극적으로 AI 닥터에 의해 완전 대체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영상의학 전문의들은 여러 가지 의료 영상을 해석하도록 훈련받은 전문가들인데, 영상 처리 기술과 인식 기술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일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컴퓨터 영상 처리 및 인식 분야에 AI 기술이 융합되면서 AI 영상 인식 기술이 인간의 시각적인 영상 인식 능력을 추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의료 업계에서 인간 의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것이 원격 의료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AI 의사가 더 위협적인 경쟁자로 다가오고 있다.
내과의사는 피 검사를 통해 Hb 수치, AST, ALT, 알부민, 크레아틴, CK 단백, CA-125 등을 검사해서 질병을 찾아낸다. 영상의학과 의사는 X-ray 사진이나 MRI, CT 사진들을 판독해서 질병을 진단한다. AI가 이를 학습을 통해 지식으로 축적할 수 있다. 그래서 의사들 중에서 내과의사와 영상의학과 의사가 가장 먼저 AI 의사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의과대학에서 전문의 과정을 선택할 때 이런 학과 지원자들이 줄어들었다는 현상이 이미 의사들에게도 AI 의사와의 일자리 경쟁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만약 법적으로 AI 닥터가 단독으로 진료 행위를 할 수 있고, 원격 의료까지 허용된다면, 인간 의사들에겐 큰 타격이다. 이것이 현실이 되면 이름난 명의에게 환자들이 몰려들어 짧은 시간 진료받기 위해서는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명의 대기 적체 문제가 AI 명의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인간 명의는 수십 년간 의료 현장에서 임상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지지만, AI 명의는 저렴한 비용으로 단시간 내에 무한정 카피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 닥터 사례
마이크로소프트의 뉘앙스(NUANCE)는 생성형 AI인 GPT-4를 적용한 AI 기술(DAX Express)이 의사와 환자의 진료실 대화를 실시간으로 정리해 의무 기록 형태로 변환해 화면에 띄워주는 솔루션이다.
그동안 기록을 정리하느라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는 의사들이 이러한 기술이 현장에 도입되면 환자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게 됐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의료 AI는 이미 의사와 환자와의 대화를 알아듣고, 종전에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하면서 작성하던 EMR 차트 기록을 대신 담당할 수 있다.
2023년 9월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로 자녀의 희귀병을 찾아낸 엄마의 사연이 의료계에서 화제가 됐다. 코트니라는 미국 여성은 네 살배기 아들 알렉스가 몇 년 전부터 턱·머리 등에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알렉스의 통증이 심해져, 일상 생활조차 못했다. 코트니는 3년 동안 17명의 치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아 다녔지만, 선천성 안면 기형과 발달 지연 등의 진단을 받았을 뿐 근본적인 치료를 받지 못했다.
코트니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들의 증상과 MRI 기록을 챗GPT에 입력했다. 그러자 챗GPT는 “척수 증후군에 가깝다”고 답했다. 이를 근거로 신경외과를 방문한 뒤 알렉스는 희귀병의 일종인 ‘숨은 척추 갈림증’ 진단을 받았다. 알렉스의 사례는 통증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소아 환자에게 희귀병 진단이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생성형 AI가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동시에 보여준다.
서울대병원은 2024년 초부터 만성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 최초로 디지털 치료기기를 정식으로 처방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치료기기인 솜즈(Somzz)는 2023년 2월 국내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 앱이다.
AI 닥터와의 경쟁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했던 신경정신의학과까지도 AI 닥터의 공세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AI 닥터와 인간 의사의 협진
AI 닥터 도입 초기에는 인간 의사와의 협진을 통해 인간 의사의 진료 효율을 높이고 오진을 줄이는 용도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3월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던 날, 많은 사람이 한 가지를 궁금해했다. ‘알파고는 왜 손이 없을까?’ 당시 언론들도 이 점이 궁금했는지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왜 로봇 팔을 만들어주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둑의 수를 계산하는 것보다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는 것이 현재로썬 더 어려운 기술이다”라고 말이다.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AI에게 쉽고, AI에게 어려운 것은 인간에게 쉽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AI의 특성이 인간과의 협업과 공존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2023년 9월 ‘랜싯 디지털 헬스’란 국제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소개된 내용을 들 수 있다. 스웨덴은 유방암 진단 때 의사 2명의 판단이 필요한데,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모자라 어려움이 컸기에 해당 연구는 의사 부족을 해결할 방안으로 AI가 유용한지를 따져보는 것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유방암 검진 과정에서 의사 1명이 AI와 함께 진단한 경우 기존처럼 의사 2명이 진단 내렸을 때보다 발견율이 조금 더 높았다고 한다. AI가 의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을지 몰라도 의사 부족을 해결할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이를 근거로 스웨덴의 한 병원은 의사를 1명만 두고 AI의 보조를 받아 진단하는 방식으로 유방암 검진 시스템을 고쳤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23년 10월 국내 한 업체가 개발한 AI 뇌졸중 솔루션에 수가가 매겨졌다. 아직은 비급여로 사용하지만, AI 기술의 상용화를 인정하는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의사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의료 현장의 여러 어려움을 AI의 도움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AI 닥터가 인간 의사보다 나은 의사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AI 닥터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 AI닥터가 현실이 되고 있다. 현재는 인간 의사의 보조 역할로 제한되지만, 미래 언젠가는 인간 의사를 단계적으로 대체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와 의사단쳬간의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강대강 대치의 이면에는 미래 AI닥터를 어떻게 전망하는지의 시각 차이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추정된다. /SNS 타임즈
AI 닥터의 미래
의료계의 궁금증은 AI 닥터가 인간 의사만큼 진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2023년 미국 의사의 평균 오진율은 약 11%, 즉 10건 중 한 건 꼴로 의사의 초기 진단이 틀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AI 닥터가 이런 인간의 실수를 줄여준다는 시각, 반대로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챗GPT는 출시 3개월 만인 2023년 2월 미 의료면허시험(USMLE)의 합격선(60%)을 통과했다. 두 달 뒤엔 구글의 의료용 AI 챗봇 메드팜 2(MedPALM 2)가 80%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1년 간 연구를 보더라도 진료-처방까지 챗GPT 의사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맡기는 일은 아직까진 시간이 소요되는 미래 일이다. 그러나 미 터프츠 의과대 병원의 샤피크 라비 최고 디지털 담당자는 "인류는 지난 100년 동안 이룬 일들을 AI의 도움으로 이제 5년, 10년 안에 성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빅 테크들은 이 같은 가능성을 알아보고 이미 발 빠르게 투자에 들어갔다. 아마존은 '헬스 스크라이브' 생성 AI 도구 개발에 들어갔고, 구글·딥마인드는 의료용 챗봇 메드팜 2를 일선 병원에 배치해 시험하고 있다.
AI 닥터는 AI 의료 기술만 발전한다고 실용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 분야의 AI 도입은 법적인, 제도적인 문제뿐 아니라, 인간의 윤리와 존재에 관한 이슈를 가져온다. AI 닥터의 오진에 대한 책임 문제 등이 제도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AI 닥터라는 기계가 인간의 생명에 관련되는 의료 업무를 수행하는데 따른 법적, 윤리적, 보안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번 의대 입학 정원 확대로 인한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는 AI 의료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답이 보인다.
의료계는 이번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의 대폭적인 증원은 의사의 미래 노동 생산성이 현재와 동일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AI 발전으로 인해 의사 노동 생산성이 계속 올라가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계산은 부정확하다고 반박한다.
이에 비해 정부는 의사가 늘면 진료비가 느는 인과관계는 없다는 입장이다. 의사가 늘어서 환자가 제때 진료받으면 중증 질환이 예방돼 의료비가 절감되고 진료에 AI를 활용하면 의사 노동 생산성을 더욱 높일 수 있어 의사를 늘려도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범위를 연간 2000명씩, 5년간을 목표로 의사 1만명을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한시적인 증원 계획은 미래 상용될 AI 의료를 고려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된다.
AI 의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의료 시스템이 질병 치료 중심에서 예방 관리 및 헬스케어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사보다 간호사 인력의 수요가 더 증가할 것이며, AI 헬스케어 로봇의 활용도 가능해진다. 의료 현장 인력을 AI로 대체하는 상황에서, 의사를 대체하는 것보다 간호사를 대체하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I 닥터가 직접 진료를 담당하는 미래 의료계에서는 진료 효율성이 향상되어 임상 의사의 필요성이 현재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AI 닥터의 고도화와 업그레이드를 이끌어갈 높은 수준의 의사 과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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