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어느 평신도의 편지 고백(2)
‘행복(幸福)공식’… 행복(幸福)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아!
“행복하면 성공한다는 등식(等式), 행복은 쟁취(爭取)가 아닌 발생(發生)에 의한 창조(創造)라는 발상(發想)의 전환(轉換)”
▲ (자료 사진. /SNS 타임즈)
‘성공(成功)하면 행복(幸福)할 것이다’라는 만족(滿足) 등식(等式) 속에서 내재(內在)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내가 추구(追咎)한 것이 과연? 이라는 영적인 갈등(葛藤) 속에서, 성공은 끝이 없는 달리기의 계속이라는 관계(關係) 방정식(方程式)을 인식(認識)하게 될 때 (이건 아니었는데?)성공 우울증이라는 단어(單語)의 습격(襲擊)이 임(臨) 한다’고 합니다.
이를 극복함에 우리 삶의 방정식을 행복하면 성공한다는 등식(等式)으로, 항상 나의 선택을 행복이라는 효소(酵素)로 버무린 떡을 만들 때, 행복은 쟁취(爭取)가 아닌 발생(發生)에 의한 창조(創造)라는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 된다고 합니다.
생각의 무장(武裝)으로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나의 동의(同議) 없이는 나를 불행(不幸)케 할 수 없다’라는 불행을 인식(認識)하지 않는 이성적(理性的) 판단으로 귀결(歸結)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감성(感性)은 이성(理性)의 종이며 감정(感情)에 앞서 판단(判斷)이 먼저 발생(發生)한다는 건전한 이성 속에서, 생각할 수 없으면 생각을 먼저 배워 행복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로 기독교 사상을 인도에 전파(傳播)하였던 영국인들에게 ‘성경 속의 예수는 이곳에 두고 당신들이 만든 세상의 예수는 가져가시오’라고 했던 비폭력 운동의 지도자 간디의 말씀처럼,
인생의 코치이신 예수의 교훈 속에서, ‘하늘의 지혜(知慧)와 권위(權威) 안에서 항상 행복하여라’라는 말씀처럼,
위에서 허락하신 신적인 행복 - 천복(天福)은 최상의 행복 즉 지복(至福: 도달의 복. 내림의 복)으로 누리며,
우물 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산 개구리와 우물 밖에서 살다 어찌하여 우물 안으로 들어간 개구리가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이 같지 않음 같이,
우물 밖을 바라보는 창조적 지혜의 습득(習得)으로 귀한 지체(肢體)가 되어 행복이라는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체하지 않도록,
야금야금 음미(吟味)하면서 우리의 삶의 중심(中心)을 성숙시켜 감사의 행복을 전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기를 갈망(渴望)하는 아픔입니다.
행복(幸福)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아!
슬픔의 영성을 애통해 하는 나의 삶이 인생(人生)의 실존적(實存的) 슬픔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慰勞)를 확신(確信)하는 믿음의 영성으로,
매일의 삶을 순수한 울음으로 울어 간구함으로 행복의 공감을 유지하고자 함은 행복은 웃음을 통하기도 하지만,
눈물을 통하여도 온다는 사실로 자아의 내면(內面) 속에서 울려오는 울림과 하나님만이 작곡할 수 있는 전율(戰慄)의 협주곡(協奏曲) 속에서 하염없는 위로를 맛보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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