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논평] '지방분권의 가면' 쓴 '중앙집권', 대전-충남 통합의 딜레마
"대전에서 대전 시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인지 광주-전남에서 뽑은 국회의원인지 알 수 없다"
[SNS 타임즈] 이장우 대전시장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청하며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표면적으로는 절차적 정당성 문제지만, 그 이면에는 지방분권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통합 논의가 실은 중앙정부 주도의 졸속 행정이자 선거 전략으로 전락했다는 뼈아픈 자각이 깔려 있다.
같은 당, 다른 대우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같은 민주당에서 같은 날 발의한 광주-전남 법안과 대전-충남 법안 간의 극명한 차이다. 광주-전남 법안에는 의무조항으로 규정된 강력한 권한 이양과 재정 지원이 담겼지만, 대전-충남 법안은 '할 수 있다'는 재량 조항으로 가득하다. 학교 설립 권한에서 교육감이 배제되고, 학교 운영비 국가지원 규정도 빠져 있으며, 특별시 정책방향을 심의하는 지원위원회에서조차 교육감이 제외됐다.
이장우 시장이 "대한민국 국토 안에서 어떠한 지역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며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이는 단순한 법안의 차이가 아니라 대전 시민에 대한 모욕이자, 지역 국회의원들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고발이다.
주민 없는 주민투표 논쟁
주민투표를 둘러싼 논쟁도 본질을 벗어나 있다. 민주당은 "주민투표 사안이 아니다. 이미 시도의회 의견 청취를 거쳤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법리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대전시의회 여론조사에서 67.8%가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통합 반대가 55.2%로 찬성(36.5%)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법적 의무가 아니니 하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형식만 지키고 정신은 버린 처사다.
더구나 광주-전남과 비교하면 논의의 성숙도부터 다르다. 광주-전남은 1986년 분리 이후 1995년부터 통합 논의가 나왔고,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67~70%에 달한다. 반면 대전-충남은 2024년 11월에야 본격 논의가 시작됐고,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급물살을 탔다. KBS 여론조사에서 대전 주민의 70%, 충남 주민의 72%가 통합 내용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한 상황에서 "6월 선거에 맞춰 밀어붙이자"는 것은 주민을 도구화하는 처사다.
지방분권이냐, 중앙집권이냐
이 시장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핵심은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지 않는 통합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행정통합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통합의 진정한 목적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실질적 권한 이양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법안들을 보면 재정 자율권은 모호하고, 사무 권한 이양은 제한적이며, 무엇보다 재원 확보 방안이 불투명하다. 이 시장이 지적했듯이 "4개 지역에 연간 20조씩 지원하려면 지방교부세 61조에서 80조를 먼저 떼어주고 나머지를 나눠주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강원도의 사례는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특별자치도 출범 시 약속한 중앙정부 지원이 법제화되지 않아 김진태 지사가 삭발 농성까지 벌이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마창진 통합 당시 약속한 도청 이전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 시장의 "법과 제도로 명확하게 해도 시민들이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 이런 상황"이라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정치의 시간표 vs 행정의 시간표
가장 큰 문제는 일정이다. 내일(12일) 행안위 전체회의, 26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는 초스피드 입법은 정치의 시간표일 뿐 행정의 시간표가 아니다. 대전시만 해도 집행 기능이 많아 버스 정책, 쓰레기 문제 등을 시가 직접 담당하지만, 충남도는 시군구에 위임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정 체계의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공무원 인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세밀한 논의 없이 "일단 통합하고 나중에 논의하자"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 시장이 "결혼하면서 집은 어떻게 할 건지, 여러 가지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부모가 '일단 결혼식 하고 나머지는 논의하자'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 것은 적절한 비유다.
대전 국회의원들에게 묻는다
이 시장의 대전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질타는 매섭지만 정당하다. "대전에서 대전 시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인지 광주-전남에서 뽑은 국회의원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은 수사가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차별적인 법안이 제출됐을 때 강력히 반발하고 지역 이익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정부안을 옹호하는 모습은 참담하다.
특히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광주-전남 법안과 대전-충남 법안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같은 당에서 같은 날 발의한 법안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대전-충남 지역 의원들이 법안 작성 과정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거나,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가야 한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여전히 가능하고,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숙의와 주민 동의, 그리고 무엇보다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전제될 때의 이야기다.
이장우 시장은 "이런 식으로 통합하면 극심한 혼란이 올 것"이며 "책임을 다져야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합을 원하는 쪽을 먼저 하고 그 부작용을 경험한 뒤 우리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발언은 냉정하지만 현실적이다.
주민투표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법적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한다면,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형식주의이며, 민주주의가 아니라 절차주의다. 주민투표를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진정으로 통합이 지역에 이익이 된다면, 시민들은 찬성할 것이다. 반대로 시민들이 반대한다면, 그것은 통합 자체가 아니라 통합의 방식과 내용이 잘못됐다는 신호다.
정부와 국회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6월 선거라는 정치적 시간표에 맞춰 밀어붙이기보다, 주민들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지방분권이고, 주민자치의 정신이다.
대전 145만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시민 없는 통합은 통합이 아니라 통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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