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시선] 대전·충남 통합법 또 좌절… 여야, 같은 법 두고 엇갈린 잣대
김태흠 지사"빈껍데기 법안에 속을 수 없다" vs 박정현 "말 바꾸기 중단하라"
[SNS 타임즈] 3.4일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해외 출장길에 오르기 직전, 기자들 앞에 섰다. 전날 2월 임시국회가 종료되면서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이 처리되지 못한 데 대해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관련 현장 live 방송: https://www.thesnstime.com/mujogeon-raibeu-gimtaeheum-jisa-haengjeongtonghab-gwanryeon-ibjang-pyomyeong-03-04il/)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충남대전 통합 및 충청발전특별위원회는 박정현 의원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두 발표문의 주제는 동일했다 — 대전·충남 행정통합. 그러나 두 사람이 제시하는 '팩트'은 정반대다.
어느 쪽이 옳은가.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둘 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이다.
쟁점 1 — "20조 원, 실체가 있는가 없는가"
김태흠 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20조 원'의 실체론을 들고 나왔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행정통합 추진에 하겠다 하면서 말 한마디 한 것뿐입니다. 지금 법안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고,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교부 방식 등 정해진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실체가 없습니다."
반면 박정현 의원 측 성명은 이 20조 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반문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까지 중단하며 처리를 촉구했던 대구·경북 통합법 역시 재원 마련 방식과 교부 기준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동일한 조건임에도 왜 대전·충남 통합법에는 반대하는가."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박정현 의원 측은 '20조 원이 실체가 있다'고 반박한 것이 아니다. 즉, 김 지사가 제기한 '법안의 재정 불명확성' 자체는 민주당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다만 민주당의 논점은 "대구·경북도 똑같이 불명확한데 거기엔 왜 찬성했느냐"는 형평성 문제로 이동한다.
쟁점 2 — "누가 먼저 입장을 바꿨는가"
박정현 의원 측 성명의 핵심 공격 포인트는 '말 바꾸기'다.
"당초 행정통합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며 앞장서 통합의 깃발을 들었던 당사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천문학적인 통합 지원금과 각종 특례를 단 하나라도 더 챙겨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단체장들이, 도리어 시·도민의 미래 먹거리를 스스로 걷어차는 저의가 무엇인가."
김태흠 지사는 이러한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우리가 제출한 법안에는 재정과 권한 이양이 포함된 알맹이 있는 법이었다"며 민주당이 당초 이를 반대했다가, 알맹이를 모두 빼고 빈 껍데기 법안을 들고 와 찬성하라고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3개월 만에 찬성에서 반대, 반대에서 찬성으로 어떻게 정치인이 소신을 바꿀 수 있는가. 바뀌려면 왜 바뀌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실제 기록을 보면 두 주장 모두 일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김태흠 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은 행정통합의 초기 추진 주체였다. 그러나 법안 내용이 구체화되자 '재정·권한 이양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 소속 대전 지역 의원들 역시 이재명 대통령이 통합을 공개 지지하기 전까지는 회의적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양측 모두 입장 변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말 바꾸기' 비판은 어느 한쪽을 향해서만 겨눌 수 없다.
쟁점 3 — "처리할 수 있었는데 왜 안 했나"
김 지사의 논리 가운데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이것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 모든 법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입법 독재 국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것만 국민의힘이 반대해서 못 한다고 합니까. 단독으로 강행 처리할 수 있는데도 단식·삭발·연좌농성 등 갖은 쇼를 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수치적으로 따져볼 수 있다. 현재 국회에서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단독 처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강행하지 않았는가.
민주당 측은 이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내놓지 않는다. 박정현 의원 성명에서도 이 부분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국민의힘이 일관된 기준을 보여야 한다"는 논점으로 방향을 돌렸다.
관측 가능한 사실은 이렇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를 자제한 데는 몇 가지 현실적 이유가 있다. 광주·전남 통합법과 달리, 대전·충남은 지역 내 찬반 여론이 갈려 있었다. 대전시의회는 주민투표 촉구 결의를 검토했고, 지역 시민단체의 반발도 작지 않았다. 여론이 쪼개진 사안을 단독 강행 처리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계산이 민주당 내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쟁점 4 — "대구·경북과 대전·충남, 왜 다르게 봤나"
박정현 의원 측 성명에서
"대구·경북 통합은 지역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외치면서, 왜 대전·충남 통합법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반대하는가. 대구·경북의 '황금'이 대전·충남에 오면 '돌'이 된다는 것인지."
김 지사는 이에 대해 "대구·경북이 통합하려면 해주면 되는 것이지, 왜 대전·충남을 패키지로 끌고 드느냐"고 반박했다. 또한 "세 곳을 동시에 추진하면 세제 개편 없이는 재원 조달이 불가능해 정부도 감당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두 주장을 종합하면 흥미로운 구도가 나온다. 민주당은 "왜 같은 법에 다른 기준을 대느냐"고 따지고, 국민의힘은 "왜 대전·충남을 대구·경북과 묶어 협상 카드로 쓰느냐"고 맞선다. 두 비판이 동시에 타당할 수 있다. 이중잣대 의혹은 국민의힘을 향하고, 의제 조작 의혹은 민주당을 향한다.
빠진 목소리 — 360만 시도민
두 발표문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공백은 '시도민의 의사'다.
김 지사는 "도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고 말했고, 박정현 측은 "지역의 백년대계를 위해 통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지역 주민들이 실제로 어떤 통합을 원하는지, 어떤 절차로 의사를 수렴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김 지사는 이날 "끝장 토론을 통해 도민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이 제안은 아직 말로만 언급됐을 뿐이다. 박정현 의원 측 성명은 지역 주민의 직접 참여 방안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양측은 '주민을 위한' 통합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주민이 통합 과정의 주체가 아닌 들러리에 머물러 있는 역설을 드러냈다.
정치 일정이 만든 통합, 시민이 만든 통합이 아니었다
이번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는 출발 단계에서부터 2026년 지방선거 일정에 맞춰 설계됐다. 지방선거 전까지 통합 단체장을 선출하려면 늦어도 2026년 초 법안이 통과돼야 했다. 이 촉박한 정치 일정이 충분한 사회적 숙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김태흠 지사의 '재정·권한 이양 없이는 불가' 논리는 지방분권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닿아 있다. 박정현 의원의 '이중잣대' 비판은, 민주당 스스로 단독 처리를 자제한 이유에 대해 솔직하지 않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행정통합은 35년간 분리된 생활권을 하나의 자치단체로 합치는,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이다. 정치적 수사와 선거 일정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가진 시도민의 선택이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두 발표문이 나란히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정치인들은 통합을 말하지만, 아직 통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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