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산성서 백제-신라 치열한 공방 흔적 확인
6일 시굴조사 결과 공개… 백제 축조 후 신라 점령·증축 추정
계획조성 흔적 확인, 단계별 발굴조사·국가문화재 지정 추진
▲ 세종시 이성 항공사진. (출처: 세종시/SNS 타임즈)
[SNS 타임즈] 세종특별자치시와 한성문화재연구원이 시 지정 기념물 제4호 이성(李城)을 대상으로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삼국시대 축조된 성벽시설임을 확인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이성 정상부 일대에서 6∼7세기 백제와 신라의 유물들이 다양하게 출토돼 이성이 위치한 세종시 일대를 두고 대치하던 백제, 신라 양국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시는 6일 전의면 신방리 이성산성 시굴조사 현장에서 전문가 자문회의 및 현장설명회를 열고 이성의 정상부 일대와 동벽 구간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굴조사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굴조사는 지금까지 지표조사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정확한 축조세력과 시기, 방법, 성격 등을 규명해 이성의 복원정비 및 사적 승격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실시됐다.
▲ 이성 1차 성벽(사진 위쪽)과 2차 성벽 전경. (제공: 세종시/SNS 타임즈)
시굴조사 결과 이성은 백제가 처음 축조한 이후 신라에 의해 점령됐고, 성벽은 2차례 이상 고쳐 쌓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가장 바깥쪽의 성벽은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와 관련된 성벽으로 추정됐다.
이성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처음 축조한 이후 점차 바깥으로 성벽을 증축하면서 현재의 규모로 확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바깥쪽 성벽의 높이는 약 8m 정도로 높게 쌓았으며, 지형에 따라 사용된 성돌의 크기와 형태를 다르게 조성됐다.
동벽 안쪽 다짐층에서는 백제토기와 기와편 등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볼 때 이성을 처음 축조한 국가는 백제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 정상부 일대는 4단으로 이뤄진 다중 평탄지가 확인됐고 각 평탄지마다 석축을 쌓아 구획한 흔적이 발견됐다.
또, 가장 아래쪽의 1단에는 다각 건물지, 2단은 저장시설, 3단은 지하저수시설, 가장 위쪽의 4단은 장대지를 배치했으며, 각 평탄지는 용도에 따라 공간의 구획과 면적을 각기 다르게 조성했다.
이처럼 위계에 따른 공간을 구분한 것으로 이성 산성의 축조가 계획적으로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동벽의 회절부에서는 성벽 주변에서 성문에 사용된 철제 못이 여러 개 발견되어 동문지(東門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의 평탄지는 흡사 오늘날의 군대 연병장처럼 당시 군사훈련을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 세종 이성 문화재 시굴조사 현황도. (출처: 세종시/SNS 타임즈)
시는 이번 시굴조사로 기존의 성곽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던 이성의 구조와 양상을 확인했으며, 향후 연차별 발굴조사를 통해 세종시 내 삼국시대 산성의 특징과 역사성을 밝혀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칠복 관광문화재과장은 “이성은 삼국시대 격전지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며 “앞으로 연차별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향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을 추진해 복원·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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