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난 발명품 101가지 이야기 (93)
‘영국의 세계제패, 열강에 패배한 조선’
[SNS 타임즈- USA] ‘대박난 발명품 101가지’ 시리즈 93번째 주인공은 근대 서구열강의 도전에 무참히 패배한 조선과 세계를 제패한 영국의 무기체계에 관한 이야기다.
▲ (자료 사진. /SNS 타임즈)
25여 년 전에 저자는 스코기의 한 작은 아파트에 살았었다. 요리에 사용되는 가스오븐에 심지 불(pilot light) 이 항상 켜져 있어서, 가스오븐 스위치를 돌리면 심지 불에서 불꽃이 전달되어 요리 불이 켜지는 구조였다.
문제는 그 가스오븐이 낡았는지 심지 불이 자주 꺼져서 오븐을 통채로 열고 라이터로 심지 불을 자주 켜곤했다.
다행히 요즘에는 심지 불이 아니라 부싯돌과 같은 장치로 요리 불을 켜기때문에, 심지 불이 사라져서 라이터로 심지 불을 켜야 하는 필요가 없어졌다.
부싯돌(flint), 수석(燧石)은 단단한 규질의 미정질 퇴적암으로 석영의 한 종류다.
부시로 쳐서 불을 일으키는 데 쓴다. 옛날부터 우리 생활 주변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심지어는 전쟁의 수발총(부싯돌로 격발 하는 총)에도 사용됐었다.
브라운 베스(Brown Bess)는 18세기 영국 육군의 제식 머스킷과 그 파생 무기에 붙은 별명이다. 베스는 그 당시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애칭이라는 설도 있다.
영국에서 개발된 75 구경 플린트락식 (부싯돌로 빠르게 격발) 장총이고 대영 제국 확장기에 사용된 무기로 그 활약은 물론이 거나 와 곧 영국 육군을 상징하는 무기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한 세기 이상 사용되었기 때문에, 설계에서 약간의 세세한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버전으로는 롱 랜드형과 쇼트 랜드형, 인디아형, 뉴랜드형, 해상용 머스킷 등이 있다.
롱 랜드 머스킷과 그 변종은 모두 75 구경 플린트락이며, 대영제국 육군의 표준 장총으로 1722년에서 뇌관 활강 총이 나온 1883년까지 사용됐다.
영국의 군수체계는 플린트락에서 1839년형 머스킷으로 알려진 새로운 뇌관 체계로 바뀌었다. 1841년 런던탑 화재는 교체도 되기 전 많은 머스킷들을 파괴했다. 19세기 중반까지도 브라운 베스는 많이 사용되었다.
어떤 것은 당시 유럽 무역상들에게서 구매해 1820년대에서 1830년대 벌어진 머스킷 전쟁에서 마오리 전사들에 의해 사용되기도 했다. 일부는 1857년 인디언 반란 때 사용되기도 했고, 1879년 영국-줄루 전쟁 때 유럽 무역상들에게 구매를 한 줄루 족 전사들이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는 멕시코 군에게 판매가 되었는데, 그들은 1836년 텍사스 혁명 때 사용을 했고, 또한 그 총으로 1846년에서 1848년까지 벌어진 멕시코-미국 전쟁에서도 사용되기도 했다.
심지어 1862년 쉴로 전투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 식민지의 남자들은 총기를 소지하도록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롱 랜드형 장총은 미국 독립 전쟁 때 양측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한 무기이기도 하다.
1871년 5월 16일 프리깃함인 기함 USS 콜로라도를 비롯한 알래스카호, 팔로스호, 모노 캐시호, 베니치아호 등 전함 5척을 이끌고 일본의 나가사키를 출발했다. 병력은 500여 명의 수병과 150여 명의 해병이 투입됐다.
미군 함대는 아산만 풍도 앞에 정박하고 작은 배에 병력을 나누어 강화도 인근을 정탐했다. 5월 26일 영종도 방어사는 이양선이 나타나 물 깊이를 재었다고 보고하고, 남양 부사 신철구가 종선 세척에 탄 미군에 다가가 글로 목적을 물었으나 미군이 영어로 글을 적어 서로 의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미군은 큰 배를 가리키며 같이 가자 하였으나 함께 가지는 않았고 서로 간에 약간의 물자만 교환했다.
이튿날 미군 함대는 남양 부사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 대신이 귀국의 높은 대신과 협상할 일이 있어 온 것인 즉, 조약을 체결하려면 아직도 날짜가 필요하므로 우리 배는 이 바다 한 지역에서 정박하고 있으면서 조약이 체결되기를 기다렸다가 돌아가겠다”라고 목적을 밝혔다.
조선의 조정은 누차에 걸쳐 미국 군함이 올 것을 예고 받았기 때문에 답변을 보내지 않고 교전을 준비했었다.
미국 군함이 영종도에 이르자 사람을 보내 교섭을 시도했지만 미군은 직급이 낮다는 것을 이유로 거부했었다. 6월 1일(음력 4월 14일) 미국 함대가 강화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 조정은 강화도에 군사와 군량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행호군(行護軍) 어재연을 진무 중군(鎭撫中軍)에 임명하여 방어토록 했다.
이 날 미국 함대중 두척이 손돌목을 지나자 조선군이 대포로 포격했다. 미국 군함은 응사하며 빠르게 빠져나갔다. 미군은 손돌목의 포격을 빌미로 강화도를 공격했다.
미국은 원정을 위해, 500명 이상의 선원과 해병대 100명으로 구성된 650명의 병력과 미국 전함 기함 콜로라도, 알래스카, 팔로스, 모노캐시, 베네시아, 다섯 척의 전함을 준비했다. 기함에는 해군 소장 존 로저스와 재중 미국 공사 프레드릭 로우가 탑승해 있었다.
6월 2일 광성진 앞 염하에 집결한 미군 함대가 포격을 개시했다. 포격을 마친 함대는 남하해 손돌목을 지날 때 또다시 포격을 가했다. 조선도 응사하며 미국 함선 일부가 파손됐지만, 미국 함대의 피해는 경미했다.
몇 차례의 포격전이 있은 후 상호 교섭을 시작했다. 미국 측 로우 공사가 해변에 편지를 쓴 장대를 꽂아두면 조선 측이 이를 읽은 후 답신하는 방식이었다.
미국은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진무사(鎭撫使) 정기원은 미국의 손돌목 침입이 불법이며 조선은 다른 나라와 교섭하지 않으니 즉시 물러가라 답신했다.
미군은 물치도로 물러가며 2-3일 안에 답신이 없을 경우 공격할 것이란 최후통첩을 남겼다.
6월 10일 미군은 함포의 지원을 받으며 초지진에 상륙했다. 군함 2척의 지원을 받으며 24척의 종선에 나누어 탄 651명의 병력이 상륙했다.
초지진을 수비하던 조선군이 백병전을 벌이며 저항했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패퇴했다.
6월 11일 미군은 대모산에 포대를 설치하고 광성보를 공격하자 조선군은 치열하게 저항했지만, 화력 열세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남기고 덕포진으로 패퇴하기에 이른다.
미군이 초지진을 점령한 날 조선인 천주교도를 태운 배가 작약도에 머물고 있던 미군 기함 콜로라도호에 접근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인 신부 3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혹시나 미군 함선에 승선했을지 알아보기 위해 왔다고 진술했다. 미군이 제너럴셔먼호의 진상을 묻자 선원들이 정중한 환대와 교역을 약속받고 상륙하였으나 환대를 받고 취해 쓰러지자 살해되었다고 대답했다.
미국 측은 조선 정부의 공식 답변보다 이들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광성보 전투에서 보복을 가하기로 결심했다.
8시간 가량 치러진 이 전투에서 조선측은 어재연 등 240여 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했으며, 2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
미군은 장교 1명과 사병 2명이 전사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하는 데 그쳤다. 이때에 조선 측은 화승총(火繩銃, 포르투갈어: fecho de mecha, 영어: matchlock)을 사용했는데, 이 것은 불이 붙은 화승을 점화구에 갖다 대어 천천히 총알을 발사하는 총이다. 화승식 총은 개인용 화기에서 최초로 사용된 화기 작동 방식으로, 서양의 아쿼버스, 일본의 종자 도총 등이 이 방식을 사용했다.
불이 붙고 타들어 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화승총과 빠른 격발 총의 대결은 결과가 이미 예견된 싸움이었다.
한편 솜을 겹겹이 댄 옷을 입고 방탄복으로 착각하고 전투에 임하였지만, 오히려 전투 중 불이 붙어서 병사들이 불에 타 죽기도 하였다.
이렇게 신미양요 이후에 조선은 1910년 일본에 강제 합방될 때까지 계속 망해만 갔다. 100여 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그렇게 바뀌지 않았다.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까지 남한의 주변에서 신무기와 핵무기 개발 및 군사 무력을 계속 증강하고 있다.
남한도 평화에 관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무기 개발에 대한 연구도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집단 지성이 함께 참여하는 Social 뉴스 플랫폼 ‘SNS 타임즈’에서는 미국 특허 상표청 등록 특허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기 변호사와 함께 ‘대박 난 발명품 100가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연재되는 글들은 이상기 변호사가 타 매체에 게재했던 칼럼을 새롭게 구성, 편집해 다시 소개하는 형식을 갖습니다.
이상기 변호사는 이 시리즈 스타트에서 “어떻게 하면 대박이 나고, 부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첫 화두를 던지며, “이들 발명품 속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보면서 우리도 본받고 모두 대박 나 부자가 되자”고 제안합니다.
앞으로 소개하는 ‘대박 발명품 100가지 이야기’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도 그냥 스쳐지나 갈 수 있는 단순한 아이디어나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일상의 불편함에서 또 다른 ‘100가지 대박 발명품’의 주인공이 되는 행운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이상기 변호사는 특허, 저작권, 그리고 상표 등 지적 재산권과 상해 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법무법인 드림에 합류하기 전 이상기 변호사는 시카고 소재 소프트비 법률 사무소에서 특허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중소기업들과 개인 고객들의 특허 신청과 자동차 상해를 담당했다.
이상기 변호사는 복잡하고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지적 재산권과 시간과 참을성과 설득력이 필요한 상해 건들에 대해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판을 받고 있다.
그는 파나소닉에서 10년 연구원 근무와 랜다우어 회사에서 10년 수석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또 주유소에 사용되는 크레디트 카드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다. (U.S. Patent #5,889,676, 1999)
이상기 변호사 약력(sang@dream-law.com)
· 미국 특허 상표청 등록 특허 변호사
· 로욜라 대학 법대, 법학박사
· 랜다우어 수석 연구원
· 파나소닉 연구원
· 일리노이 주립대학 – 전산학과 석사
· 일리노이 주립대학 - 전산학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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